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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아내에 대한 일기

D+14일(05.04) 우리 결혼기념일에 휠체어를 첨 탔다.

by 뚝밑아이 2017. 5. 4.

 

오늘 아침에 재원이 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중으로 집사람을 CT촬영 후 병실로 옮겨야겠단다. 그러더니 10분도 안되어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CT실로 갔단다. 그리고 바로 병실로 옮긴단다. 준비가 되는 대로 바로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재원이가 서울에 볼일이 있단다. 그래서 자동차 두 대로 가기로 했다. 10:00에 도착을 하여, 알려주는 대로 병실을 찾아갔다. 조그만 팜플렛에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신관이라 묻는 사람이 많아 만든 것인가 보. 로비에서 길이 없을 때까지 ↑→↑→한 뒤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8873호로 가라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안내원이 다가와 문병에 대한 안내를 상세히 해 주었다. 여기도 평일18:00~20:00인데 휴게실에서 기다리다, 1인씩 교대를 해야 한단다. 공휴일에는 10:00~12:00 추가된단다. 그리고 보호자 1인은 상주할 수 있단다.

어제까지에 비해선, 참 편해진 것이다.

 

 

873호실에 들어갔다. 간호사실 바로 앞의 중환자 6인실이다. 다른 환자들도 비슷한 증상으로 입원한 환자들인 듯하다.

 

 

그런데 집사람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눈도 뜨지 않고 얼굴도 밝지 않았다. 그리고 옆으로 누워 이쪽저쪽으로 뒤척이고 있다. 아직도 머리가 아프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끄덕인다. 여기서 끄덕인다는 말은 반대로 턱을 들어 보이는 몸짓이다.

설아가 집사람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 무슨 날이야? 아주 중요한 날인데.” 결혼기념일?!” 이내 대답했다. 어제 l일러준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의사가 면담을 하잔다. 나는 들어도 다 잊어버리고, 재원이는 슬리퍼를 사러갔기 때문에, 설아를 불렀다. 나도 옆의 자리에 앉았지만, 무슨 소린지 확실하진 안다. 화면으로 미루어보면 머리에 차 있던 혈액은 많이 빠져나갔다는 말인가 보다.

집사람이 운동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도 괜찮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휠체어를 타려면 수액 등 주렁주렁 달려있는 부속장비를 어찌해야 하는지 간호사와 협의를 해야겠다.

재원이는 서울에 다녀오고, 나는 집에 가서, 설아의 침구와 선풍기를 사오기로 하였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인사했다. “ 여보 있다 또 올게.”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다음은 설아가 친지 여러분께 드린 메시지다.

날이 부쩍 더워졌네요. 모두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2주에 접어든 오늘 오전 어머니께서 일반병동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다만 일반병동의 중환자실이긴 하구요.

현재 엄마의 겉보기 상태는 비슷하신듯합니다 만, 오늘아침에 찍고 올라온 CT결과에 의하면 다행이 수두증은 삽입관 제거 후에도 정상상태를 유지하고 계시고 출혈도 거의 다 흡수된 걸로 보이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한 안정기로 볼 순 없으므로, 일주일정도 안정을 취하시면서 경과를 지켜본 뒤, 일반병실로 이동여부를 결정한다고 하구요. 하루에 한두 번씩 휠체어를 이용한 거동을 시작해보길 권하셨습니다.

(지금 본인은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셔서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어 하시긴 합니다.)

또한 24시간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하는 상황이라, 오늘은 제가 먼저 곁을 지키기로 했고요.

면회는 작년 메르스 사태이후로 시간제한을 만들어서

평일 18:00-20:00, 주말/공휴일 10:00-12:00 추가. 이렇게 정해져 있더라 구요.

혹시라도 향후에 면회 오시게 되면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주무시고 계시긴 하지만 옆에서 계속 뵙고 챙겨드릴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그러니 친지분 들께서도 조금은 걱정 더시고 지금처럼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릴게요!

-설아 올림-

다음은 설아가 나에게 보낸 추신이다.

아빠! 카톡에 올린 게 내용 거의 다에요.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한 번 더 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여쭤봤는데 당장은 마찬가지 결과일거고 위험성도 있는 검사라 만약 한다면 나중에 시간간격을 두고 하라고 하시면서 그 시점은 담당교수님이 말씀을 해주실 거라고 하더라고요.

나의 iPhone에서 보냄

 

집에서 좀 쉬고 설아 침구와 소형 선풍기를 사가지고 저녁 면회시간에 맞추어 갔다. 처제 내외가 뒤이어 왔다. 처제는 아침 일찍부터 투표종사원으로 활동하다 끝나기 무섭게 출발했단다. 우선 동서와 설아 셋이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저녁을 설아 것을 제외한 두 개를 시키자마자 처제의 전화가 왔다. 집사람이 큰 것을 저질렀는데 혼자 감당하기 어렵단다. 설아가 바로 올라갔다. 나중에 설아 말이 처제가 다 치웠단다. 그동안 동서와 나는 저녁을 잘 먹었다. 나중에 교대를 하고 설아가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와선 아버님 계실 때 어머님 휠체어 태워드리란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일이 없다. 처제가 마주 안아서 태웠다. 그리고 다른 부분 준비를 했다. 그리고 밀고 나왔다. 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폰을 꺼내서 촬영 했다. 분위기가 잘 안 보인다고 하여 안경을 가져다 씌웠다

 

 

 

그리고 설아가 결혼기념일 사진을 찍어보라 해서 내가 휠체어를 잡고 병동을 두 바퀴 돌았다. 참 잊을 수 없는 결혼기념일 이벤트였다.

 

 

자리에 눕히고 내일 또 올게. 설아가 오늘 여기서 잘 거야.”

나와서 설아가 간병사 단체에 전화를 했다. 세군데 통화를 한 뒤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19:00부터 이튿날 07:00까지 열두시간이다. 급료는 45,000원으로 최저임금도 안 된다. 결재 방법은 일주일 단위로 마지막 날에 지불한단다. 그리고 병실과 환자이름을 알려주었다.

내일은 내가 미사에 참여하고, 10:30에 설아가 타고 돌아올 설아 차로 출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