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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우리집앨범

딸 이야기

by 뚝밑아이 2017. 3. 1.

리의 이다.

왜 우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나만 차지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옛날 36년 전의  이야기다.

일년 전 귀여운 아들을 얻은 다음의 딸은 느낌이 전과 같지 않았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것은 절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똑같은 자식인데......

 

그런데 해가 갈 수록, 그래서 나이가 들 수록 딸의 마음은 너그러워져 갔고, 부모의 염려를 덜어갔다. 

 

 

 

 

돌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귀엽긴 아들과 마찬가지였다.

 

 

 

 

1985년 1.13 세돌 때의 모습이다. 마음 씀씀이가 오빠보다 너그러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1986년 유치원에서 학습발표회를 할 때  가운데에서  노래를 부르며 캐스터네츠를 치고 있는 모습이다.

 

 

 

 

초등학교 5학년 쯤 되었을까?  너무 깡말라서  이때부터 붙여진 별명,  고등학교 시절까지 줄곧  나무젓가락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정원에서, 오빠를 졸업시키고...

 

 

 

 

여고를 졸업하는 날이다.

 

 

 

 

수능 점수가 아주 잘 나왔다. 대학교 축공학과를 지원하여 다녔다.  

교대를 갈 것을 권유했지만,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이어받기 싫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교대가 훨씬 나았을 터인데, 그땐 건축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높은 점수를 받아낸 딸아이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했다.

그래서 오늘 졸업하게 된 것이다.

 

 

 

 

엄마와 오빠와 함께

 

 

 

 

학교를 상징하는 깃발 아래에서...

 

 

 

 

동료 친구와 함께...  나중에 알고보니 9년 후에 사위가 될 놈이었다.

 

 

 

 

우리 4인 가족이다.

 

 

 

 

건축 공학과의 홍일점이 졸업을 하니까, 모두 야단들이다.

 

 

 

 

우리 가족과 서울에 사는 고모도 같이......

 

 

 

 

학사복을 반납하고 이젠 숙녀가 되었다.

 

 

 

 

같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미국 어학연수와 시카고 자매회사의 실습 등으로 1년을 보내고  3년 후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구실 앞에서

 

 

 

 

부모와 함께

 

 

 

 

연구실의 동료들과 함께...

 

 

 

 

분수의 물처럼 이제 학교와도 작별해야겠다.

 

 

 

 

이제 떠나야 할 학교,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공간이라는 설계회사에 들어갔다.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3년 후 그렇게 유망하던  큰 회사가 도산을 했다.

할 수 없이 회사를 나와 밀린 임금 때문에 회사와 소송을 하면서 재취업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2014년 9월에 한전 건축분야에 응시하여 합격을 하고, 인턴과정을 마쳤다. 모두 7~8년 후배들과 같이 입사를 한 것이다. 

현재는 서울에 있는 건설처에 근무하고 있다.

 

 

추신

그뒤에 3년동안 '건축사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했다.

건축학도의 궁극적인 목표로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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