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딸이다.
왜 우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나만 차지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옛날 36년 전의 이야기다.
일년 전 귀여운 아들을 얻은 다음의 딸은 느낌이 전과 같지 않았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것은 절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똑같은 자식인데......
그런데 해가 갈 수록, 그래서 나이가 들 수록 딸의 마음은 너그러워져 갔고, 부모의 염려를 덜어갔다.
돌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귀엽긴 아들과 마찬가지였다.
1985년 1.13 세돌 때의 모습이다. 마음 씀씀이가 오빠보다 너그러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1986년 유치원에서 학습발표회를 할 때 가운데에서 노래를 부르며 캐스터네츠를 치고 있는 모습이다.
초등학교 5학년 쯤 되었을까? 너무 깡말라서 이때부터 붙여진 별명, 고등학교 시절까지 줄곧 나무젓가락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정원에서, 오빠를 졸업시키고...
여고를 졸업하는 날이다.
수능 점수가 아주 잘 나왔다. 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지원하여 다녔다.
교대를 갈 것을 권유했지만,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이어받기 싫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교대가 훨씬 나았을 터인데, 그땐 건축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높은 점수를 받아낸 딸아이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했다.
그래서 오늘 졸업하게 된 것이다.
엄마와 오빠와 함께
학교를 상징하는 깃발 아래에서...
동료 친구와 함께... 나중에 알고보니 9년 후에 사위가 될 놈이었다.
우리 4인 가족이다.
건축 공학과의 홍일점이 졸업을 하니까, 모두 야단들이다.
우리 가족과 서울에 사는 고모도 같이......
학사복을 반납하고 이젠 숙녀가 되었다.
같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미국 어학연수와 시카고 자매회사의 실습 등으로 1년을 보내고 3년 후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구실 앞에서
부모와 함께
연구실의 동료들과 함께...
분수의 물처럼 이제 학교와도 작별해야겠다.
이제 떠나야 할 학교,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공간이라는 설계회사에 들어갔다.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3년 후 그렇게 유망하던 큰 회사가 도산을 했다.
할 수 없이 회사를 나와 밀린 임금 때문에 회사와 소송을 하면서 재취업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2014년 9월에 한전 건축분야에 응시하여 합격을 하고, 인턴과정을 마쳤다. 모두 7~8년 후배들과 같이 입사를 한 것이다.
현재는 서울에 있는 건설처에 근무하고 있다.
추신
그뒤에 3년동안 '건축사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했다.
건축학도의 궁극적인 목표로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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