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밤 21:35에 대한항공편으로 귀양공항에 갔다.
4시간 20분이 걸려 중국시각 14일 00:55에 도착하여 호텔로가서 짐을 푸니 02:30이 되었다.
같은 날 이른 아침(한국 아침식사 같지도 않은)을 먹은 뒤, 차를 타고 거리로 나왔다.
30층이 넘는 주상복합아파트 앞인데 전화선이 엉망으로 걸려있었다. 중국은 아직도 우리한테 한수 배워가야 겠다.
먼저 귀양시내에 있는 검경산(黔灵山)공원에 갔다. 정문 사진은 집사람의 PHON으로 찍은 사진이다.
길가로 습지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곳곳에 중국사람 특유의 춤을 추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젊은 리더가 한명 있고, 모두 그를 따라서 즐겁게 추고 있었다.
찻집의 파라솔 반영이 예쁘게 보이길래 담아보았다.
기린동(麒麟洞)이라는 곳에 갔다. 무슨 구경거리가 있는지 사람이 많이 모여있다.
아들을 앞세우고 가는 아빠가 있어, 반영과 함께... .
중국도 출산률이 낮아져 다산을 권장하고 있다던데,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에서도 그러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원숭이를 자유롭게 풀어놓아,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먹을 것을 얻어먹는 모습이다.
귀주성박물관에 들어갔다. 출입구에 피슈라는 동물의 조삭상이 있었는데 아는 사람들은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간다.
피슈(pixiu),우리말로 비휴(貔貅)라는 상상의 동물이다.
항문이 없어 먹기만 하고 배설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물을 모으는 상인들이 선호하는 동물이 되었다.
중국의 곳곳에 피슈의 상이 세워져 있다. 또 여러가지 노리개와 장신구 등으로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한단다.
역시 거대한 공룡의 화석인듯 하다. 머리가 작고 꼬리가 긴 것으로 보아 그리 지능적이고 활동적인 동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수민족의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매우 크고 화려하여, 여인들의 호감을 살 것 같다.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귀양 시내도 고층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있었다. 주상복합아파트인듯 한데, 주거공간만 31층이나 된다.
아파트는 빈집이 많지만, 장래를 위하여 계속 짓는단다. 차량도 많이 늘어났다. 그래서 여러가지 차량운행 방법을 구사하고 있단다.
청암고진(靑岩古鎭)에 왔다. 문루가 멋드러지게 서 있었지만 아쉽게도 공사중이었다.
안내판이 서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청암고진 관광안내도라고 표시할걸 청암고진유람간개급도람도라고 표기하였다.
중국어는 참 어려운가보다. 한자만 알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북문으로 들어가 옆길로 빠지지 말고 남쪽 外城門인 정광문(定广門)까지 왕복하란다.
북문 문루와 성과 일부를 잡아보았다.
성곽으로 오라가서 잡아보았다.
성곽 앞에 보도를 만들고 조그만 나무도 심어 놓았다. 멀리 이어지는 성곽은 따라가지 않았다.
성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운남성 여강고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황산의 명청대 시장과도 유사했다.
왼쪽으로 가면 문창각(文昌閣)과 수불사(壽佛寺)가 있다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길을 잃기 쉬우니 남문까지 직진만 하고 돌아오라는 안내를 받아서 가지 않았다.
내리막 길도 있었다.
그 옆에 무슨 도교 사원인듯한 분위기도 보었다.
그 옆으로 돌로 쌓은 벽과 기둥이 보이고... .
길 가운데 문이 있고, 승평인서(昇平人瑞)라고, "나라가 안정되어 아무 걱정이 없이 평안하며, 모든 사람에게 상서롭다"라는 뜻이란다.
그 문 아래에서 중국의 처녀들이 전통 복장을 갖추고 여류사진가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나도 옆에서 몇컷 주웠다, 그 옆에 문 기둥마다 피슈라는 상상의 동물이 두마리씩이나 물구나무로 서있다.
내성문(內城門)인가보다. 지나가서 외성문인 정광문(定广門)쪽으로 조금 가다가 되돌아왔다.
나중에 안 일이만, 아주 조금만가면 될 정광문을 가보지 않은 것이 가슴아프게 후회가 된다.
돌아오는 길이다.
https://www.google.com/maps/@26.4221215,106.6812111,11z/data=!3m1!1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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