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늘 오후는 내가 집사람을 돌보기로 했다. 12시가 가까워 오자 설아가 시장을 보자 했다. 처형이 주문하셔서 요리를 해서 내게 보내시려고 설아에게 주문을 하신 것이다. 장을 보아서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모두 싣고 처형 댁까지 모셔다 드렸다.
집사람은 잠을 많이 자는 듯하다. 설아가 오전 프로그램 중 무엇을 하고 빠트렸는지 궁금하단다. 프로그램이 바뀐 것도 알아보란다. 프로그램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내일 퇴원하여, 집에 가야겠어. 여기에서 치료하는 것도 별로 맘에 들지 않고, 중증환자들과 같이 취급받는 것도 싫어.”
“어떻게 퇴원을 환자 마음대로, 즉흥적으로 할 수 있어? 의사와 상의 해 보고,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설아와 연락해 보았다. “엄마가 애를 삭이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나?”
설아의 말은 오빠와 상의해 보았는데, 원광대병원 예약 진료할 때 의사에게 문의해보고, 오빠를 통해 서울 병원을 알아보는 중인데, 그쪽 의사의 의견도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듣는 소리이지만 그게 옳은 듯 하고, 집사람에게 설득시켰다. 집사람도 수긍을 하였다.
그리고 15:20에 재활치료 오후 첫 단계 인지치료 30분에 들어갔다. 17:30까지 NDT 30분, FES 20분, M&G 30분 치료가 이어졌다. 마지막 치료사에게 팁을 주자고 하여 스스로 주게 돈을 건넸다. 시원하게 마사지를 잘 해주었단다.
입원실로 돌아오니 저녁식사가 배달되어 있었다. 처형의 말대로 찰밥을 꺼내어 데워오고, 반찬을 꺼내 상을 차려 나와 밥을 바꾸어 먹었다. 준비해온 찰밥의 반을 덜어 나의 밥에 얹었다. 서로주거니 받거니 하다, 집사람의 고집에 지고 말았다.
식사를 끝내고 약을 먹었다. 약의 분량을 탄식하면서 꾸역꾸역 모두 삼켰다. 참 고역인 모양이다.
잠시 후 18:40인데 간병사가 20분이나 일찍 오셨다. 교대시간 10분 전에 집사람이 어서 가랜다. 전에는 혼자 두고 가족들이 가 버리는 현상에 대해 섭섭하지 않을까? 생각 했었는데, 지금은 당연히 가는 것으로 알고 빨리 가라고도 하는 걸 보고 벌써 격세지감을 느낀다. 악수를 꼭 하고 헤어졌다. 처형의 전화가 왔다. 들렸다 가라는 말이다. 낮에 설아가 준비한 찬거리로 반찬을 만드신 모양이다. 반찬을 받아들고 20:10에 집으로 왔다. 재원이는 서울에서 22:10에 도착했다.
설아가 그동안의 병원 진료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중 의사에게 질의하고 싶은 내용만 옮겨본다.
질 의 사 항 |
`1.지주막하출혈이라고 하는데 ,출혈부위는 현재검사결과상 찾을 수 없는지? 발견 못했다면 언제 또 조영술 검사를 해보는 게 좋을지? (향후검사 간격)
2.원인 및 향후관리? 경계성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으신데, 혈압 약은 7년 전부터 반완씩 드셨고, 고지혈증 약은 4년 전에 잠시 드시다 현재는 복용 않고 계심 (2016년 검진 상 LDL 콜레스테롤 수치 152)
3.손상부위는? MRI 사진 상으로 알 수 없는 건지? 현재 어지러움, 시야 초점 안 맞음, 졸림이 가장 큰 불편증상인데, -Dysarthria(눌어증-초기에 발음 어눌하셨음), Nystagmus(안구 진탕증-이에 따라 어지러움 발생한다고 함), Aesthesia(무력증) 등이 소뇌 손상에 의한 임상증상이라고 하던데 가능성이 있는 부분인지 궁금. -현재 겪고 있는 증상들이 회복은 가능한 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어떠한 치료가 필요한지? 본인이 집에 가서 쉬기를 원하는데 적극적인 물리치료와 집에서 쉬는 것 중 어떤 게 지금 상태에 더 좋은지?
4.원대병원 처방약 중에 메니에르병 약과 협심증 약 등이 들어있는데, 전부다 꼭 필요한 약인 건지? 약의 부작용일 가능성은 없는지? |
27일. 처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식사는 어느 정도 했는데, 퇴원이야기를 또 거론한 모양이다. 재원이와 설아에게도 당부했다.
재원이가 분당 서울대병원에 5월 31일 질료예약을 하고, 원광대의 소견서와 진료한 CD를 가지고 가서 의사와 면담할 예정이다. 설아도 6월 5일 원광대 외래진료를 대비하여 진료내용과 증상, 질의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두 아이의 활동결과를 본 후 퇴원을 논의해도 될듯하다고, 집사람을 설득시켜보라 했다. 아이들이 동분서주하는 노력을 이해하여주길 바란다.
외사촌 동생 종택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조금 뒤에 들러본다고 한다. 무슨 일일까?
14:10 점심식사를 하려는데 연락이 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에 언제 왔었는지 기억이 없다. 105동 1104호라고 일러주었다. 잠시 후 휠체어가 들어왔다. 오른쪽 발이 종아리가 온전하게 붙어있지 않다.
이 인간아! 8번 수술을 했다기에 자르기는 하지 않은 줄 알았더니 종아리도 온전하지 않았다. 보험처리가 심사 중이기는 하지만, 어떤 쪽이든 처리가 될듯하다고 한다. 장애자로 등록을 해야 하겠고, 참 한순간의 실수가 사람을 전혀 다른 운명으로 바꾸어 놓았다. 누구나 교통사고는 조심하는 게 으뜸이고 전부라는 걸 새삼 느낀다.
설 아한테서 전화가 왔다. 집사람의 컨티션이 아주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이 돌보겠다고 내려오고, 딸과 사위 외손자까지 왔으니 좋을 수밖에!
그 기분을 오래 간직하기 바란다. 설아네는 부여아울렛을 들르기 위해 바로 나왔고, 재원이 홀로 돌보다가, 저녁때엔 이모 두 분이 따로따로 식사준비를 해 왔단다.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눈으로 직접 보진 않았지만, 형제간의 우애가 참으로 좋아 보인다고 감탄한다. 손아래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여드린 결과가 되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분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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