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 식사를 하고 집사람 약도 빠트리지 않았다. 집에 오니 입맛이 약간 돌아온 듯하다. “안가면 안 돼?” 꼭 어린애 같다. “안돼!” 사정없이 못을 박았다. 09:30에 출발하자고 했지만 이런저런 일로 40분에 출발했다. 바쁜데 앞의 차들이 꾸물거린다.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경적을 길게 울렸더니 딸아이가 만류를 한다. “아빠! 왜 그래?” 내가 너무 흥분한다는 말이다. 딸아이에겐 미안했지만 앞의 차는 속력을 내더니 비켜주었다. 사정없이 달렸다. 하지만 신호나 과속 위반은 피했다. 병원 앞에서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공간이 없어 겨우 찾았는데, 옆의 차가 차선을 넘어 엉터리로 받쳤다. 두 차 사이에 차를 대면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른쪽 차선에 최대한 밀착시켜 나의 내릴 공간을 확보하고, 오른쪽 차는 제가 잘 못 대었기 때문에 조수석으로 탈 수밖에 없게 하였다.
그리고 들어가니 2층 뇌신경과로 갔다. 입원하였을 때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던 의사가 보였다. 설아는 친절하지 않은 의사를 싫어하였다. 나는 의사는 친절 보다 실력이라고 의사를 믿는 말을 했다. 설아는 거기에 아주 조금만 더하면 참 좋은 의사가 될 텐데 아쉽다는 말을 했다. 호전되고 있는 결과에 대하여 의사도 긍정적으로 반응을 하고 약을 많이 줄인다고 했다.
다음에 호흡기 내과로 가야 한단다. 내가 집사람을 데리고 갔다. 예약증을 떼어서 주며 의사진찰실 앞에 꽂아놓으란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나중에 설아가 영수증을 주고 왔다고 나무란다. 간호사는 집사람의 폐의 사진을 찍어오란다. 지난번과 비교하기 위함이란다. 집사람을 영상실로 데리고 갔다. 3인용 의자에 혼자 길게 앉았다. 한참 뒤에 설아가 서류를 마감하고 왔다. 영상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의사에게 갔다. 지난번 사진에는 밤송이만한 하얀 점이 있었는데 깨끗이 없어졌다. 그것이 폐렴의 흔적이란다. 그 흔적은 병원에서 가래검사를 할 때 나왔던 희귀한 세균에 오염된 것이었다. 폐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이니 안심해도 될 듯 했다.
“안가면 안 돼?” 듣던 목소리다. 다시 재활병원으로 가면서 집에서의 하룻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집이 좋으면 빨리 나아서 가자!” 고속도로를 달리다 벌곡 휴게소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내가 먼저 화장실에 가면서 자동차 열쇠를 설아에게 맡기고 갔다. 혹시 냉방기라도 켜야 할 경우를 생각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설아가 갔다. 집사람이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차 문을 열어 달랜다. 그래서 열쇠를 찾기 위해 설아를 기다렸다. 그런데 설아는 내가 받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내가 받은 기억은 없지만 자동차 안을 철저히 찾아보았다. 봉투와 가방 속, 의자 밑 등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설아가 화장실 어디쯤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까, 다시 다녀왔지만 빈손이었다. 참 딱하게 되었다. 차 열쇠가 없으면 이 더위에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하나? 하면서 걱정을 했다. 그렇게 너무 오래 찾았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분실신고를 해놓고 다시 차안을 뒤적이었다.
“여기 있다.” 설아의 이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디서 찾은 거야? 조수석 거울에 걸어놓은 것을 그리 찾아 헤맨 것이었다. 아마 30분은 찾았을 것이다. 물고기의 눈을 가졌다면 금방 찾았을 터인데 인간은 앞만 그것도 시야가 매우 좁은 걸 새삼 느꼈다. 쉬는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씽씽 달려서 15:00에 병원에 도착하고 집사람은 이내 누웠다. 15:20 인지훈련도 싫다고 잠만 자고 있다. 우린 내일을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인사와 방법은 퍽 늘었다.
그런데 15:55 작업치료 대신 오전에 계획되었던 전기자극치료(FES)를 입원실로 내려와서 하고, 통증치료는 간병사가 2층으로 모셔가서 받았단다. 그리고 집사람의 상태가 좋아져서 훈련시간을 늘인다던데, 힘들다고 하여 줄인지 일주일 만에 늘인다니 이해가 안 된다.
내일은 내가 집사람을 돌보아야할 입장이다. 수요일부터 성당 예비반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일은 10:30에 치과에도 들러야 한다. 치과에서 항상 많이 기다렸던 터라 진료가 몇 시에 끝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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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나의 치과 진료를 가면서 언제 끝날지 걱정이 되었다. 10:30 외약인데 15분 일찍 갔다. 신고를 하고 기다렸다. 50분을 기다리고 여쭈어보았다. “예약시각과 부르는 시각은 관계가 있습니까?” “안에서 부르지 않네요, 한분만 지나면 될 것 같아요.” ‘그럼 기다랄 걸 괜히 애기 했구나!’ 잠시 후 내 이름을 불렀다. 턱뼈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훈규씨가 오더니, 아주 잘 되었네요. 잘되었다는 말은 뼈가 잘 돋아났다는 이야기다. “일주일 뒤 아스피린 5일 먹지 말고 오세요. 그때 이를 해 넣겠습니다.” 나와서 5월 31일 09시로 예약하고 왔다.
그러니 시각이 홈플러스 다녀올 시간이 남았다. 설아와 홈플러스를 가서 간단한 장을 보았다. 그리고 차속에서 짐을 꾸렸다.
설아를 집 앞에 내려주고 대전으로 향했다. 10분 전에 교대를 해 드렸다.
병실 앞의 게시판과 휠체어 안내판의 내용이 달라 간호사실에 문의해 보았다. 후자가 맞는 것이란다. 총 하루 260~290분으로 시간은 늘어났지만 힘든 활동은 제외되었다는 말을 했다.
입원실에 왔더니 누워서 있었다. 집사람 전화기를 침대에 놓고, 글씨 크기를 늘였다. 약이 졸리는 성분이 있는가보다. 30분간 작업치료(OT)를 하고 돌아왔다. 다음 치료하기 싫다는 걸 싸워가며, 보냈다. 신경발달치료(NDT)와, 5분 쉬었다가 전기자극 치료(FES)를 하고 나면 10분 쉬는 시간이 있어 가 보았다. 그런데 5분 쉬는 시간에 안보여서 치료사 전화로 걸려고 하다, 내 중간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못 걸었단다. 전화기를 침대에 그냥 두고 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고 섭섭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마지막 물리치료(M&G)는 생략하기로 합의 했단다.
치료실에 맡겨놓고, 40분쯤, 병원 앞의 모습 살펴보러 나갔더니 나를 찾았단다.
그래서 입원실로 왔다. 잠시 후 저녁식사가 배달이 되었다. 찰밥을 데워오고, 배달되 메밥은 내가 먹기로 했다. 밥맛이 없다고 조금만 먹는 단다. 하지만 집에서도 그리 많이 먹는 습관은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먹었다.
잠시 후 약을 먹이려 했는데, 너무 잠이 많이 온다. 속이 할퀴는 듯이 쓰리다. 주문이 많아 간호사실에 약을 가지고 내려갔다. 그리고 문의를 했지만, 잠이 오는 약은 잠자기 직전에 따로 먹였으며, 속이 쓰린 약은 담당 전문의의 새로운 처방이 있어야 한단다. 돌아와서 그러하니 오늘만 그냥 먹어보자고 했다. 아프지 않으려고 약을 먹는데, 약을 먹어서 더 아프다면, 그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거부했다. 그도 그렇다. 집사람의 말도 맞다.
그러다가 문병손님들이 여러 명 들어오셨다. 부창초 근무 선후배들이다. 서너 분 오실 줄 알고 준비한 청포도와 블루베리를 섞어 내놓았다. 좀 모자랐지만 그것도 남기고, 한참 동안 이야기 하다 가셨다. 가신 뒤에 집사람의 기억력을 테스트 해 보려고, 온 사람들의 이름을 이야기 해 보라고 했다. 김금◉, 유영◉, 박종◉, 김복◉, 신미◉, 해◉이엄마 임재◉,, 그런데 한두 분 빠진 듯하다. 구문인 듯 하여 더 캐묻지 않았다.
잠시 후 성동초 모임도 오셨다. 여섯 분이 한꺼번에 오셨다. 성동 모임도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식사 때에는 죽을 지경인 듯 하던 집사람이 기운을 차린 듯하다. 기억력 테스트는 하지 못했지만, 이춘◉, 조연◉, 남궁정◉, 정해◉, 신춘◉, 박윤◉, 더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데, 이튿날 24일 집사람 에게서 물은 결과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 주변 환자들에게 폐가 되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어서 간병사와 처형과 처제 내외도 왔다. 분위기가 달라진 틈에 약을 먹였다. 7시가 훨씬 지났지만 처제가 늦게 와서 일찍 나오지 못했다. 밤 운전을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8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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