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늘은 내가 가기로 했다. 막내동생 영순이 내외가 온단다. 그 자리에 오빠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1시간 전에 출발했다. 충분할 것으로 알았는데 건양대 병원 앞 까지는 30분이 걸렸지만, 도안동로로 들어서면서 신호등과 차들이 몰려오는데 도안동로 5km남짓한 거리를 30분이 걸렸다. 간병사의 교대시간을 10분정도 넘겼다. 갑의 입장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아침은 잘 드셨단다. 쉴 새도 없이 9층 물리치료사가 모시러 와서 갔다. 그 곳에서 전기자극치료(FES)를 하고 있었다. 20분쯤 지나자 신경발달치료(NDT) 30분, 성인신경계 물리치료(M&G) 30분을 차례로 하니 기진맥진 하였다. 끝나고 다음 작업치료(OT)를 하려면 약간의 쉬는 시간이 있어 입원실로 왔는데, 다음 치료(OT)를 하지 않겠단다. 실강이를 하다 점심이 나왔다. 내가 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점심을 20% 정도만 먹고 그만 먹는단다. 반찬이 매워서 못 먹는 단다. 영양사가 방문을 하여 식사를 체크하였다. 맵지 않게 주문을 했다. 치료를 받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아 참 속상했다.
그래도 내일 아침 일찍 건양대 병원을 들를 것을 준비해야 했다. 원무과에 갔더니 진료의뢰서를 주면서 수납은 본인부담 100%로 하고, 진료비 영수증, 진료비 세부내역서, 약이 있으면 원내조제로 해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집사람이 입안이 따가운 것을 선치과에서 치료받아 효과를 보았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 약이라도 지어오란 것이다. 폰의 카카오맵에서 선치과병원을 찾아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전화를 걸고 당시 약을 다시 처방해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오래되어서 환자가 직접 와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사고가 있어서 거동을 하지 못한다고 하니 잠시 기다리란다.
그때 집사람의 어린 시누이 내외가 왔다. 나보다 15살터우리의 막내이다. 안쓰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안도하였지만 오빠와 찌그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안쓰러워했다.
그리고 30분쯤 기다리니 선치과병원에서 오라는 싸인이 떨어졌다. 병원을 찾아가는데 차로 40분은 걸리나보다. 가보니 그 병원을 잘 찾아 간 것이다. 들어가 이야기 하니 처방전을 끊어 주었다. 약을 지어가지고 돌아오니, 시간 반은 걸린 듯하다.
하루 재활훈련 양이 하루 최대 320분이었는데 , 집사람이 힘들어하니 125~195분으로 대폭 줄였다. 그리고 줄인 일과표대로 오후 훈련을 시누이가 보는 앞에서 받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고 나오면서 오늘 마지막 치료는 따뜻하고 아주 좋았다며 싱글벙글 했다. 그때까지 시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도 나와 먹고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서울까지 가려면 너무 늦었으니 가라고 떠밀었다. 아기를 보고 가겠다는 걸 다음에 보라고 정확한 주소를 받아 놓고, 나중에 설아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래까지 전송을 하고 돌아왔다. 그동안 밥을 모두 먹고 있었다. 밥그릇에 물을 부어 깨끗이 먹고 있었다. 점심을 거르다시피 하더니 배고팠던 모양이다. 아니면 시누이가 안와서 내심 섭섭했었는데, 와서 오랫동안 이야기 하면서 서운함이 풀어진 모양이다. 어쨌든 기운도 차리는 듯 하여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선치과의 약을 먹기 전에 병원 당국에 이야기 하는 것이 도리일 듯하여 이야기 했더니, 내일 건양대 병원의 처방처럼 그리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양대를 들러서 선치과에 다시 가서 병원비를 더 내고 처리를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선치과병원에서 가져온 약도 재활병원에서 매일 챙겨주기로 하고 가져갔다. 아무튼 오늘 큰일을 많이 한 듯하여 피곤함도 잊은 듯하다. 그리고 7시가 되기 전에 간병사가 오셔서 10분 일찍 나왔다. 오는 길에 예행연습을 겸하여, 건양대 병원 옆으로 왔다. 20분이 걸렸다. 그래도 아침처럼 막히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시동생 명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로 탄식을 하며, 연락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을 했다. 나는 핑계처럼 각자 살아가기에도 바쁜 시기에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고 했지만, 말이 안 되었다. 동생은 사는 모습에 대한 탄식도 섞여 있었다. 나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동생은 금요일 밤에 논산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금요일부터 월례회로 묘도를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러자고 했다. 금요일엔 춘희동생도 불러야겠다. 같이 회포를 풀어야겠다.
17일. 오늘은 07:10에 출발하자 하고 06:30에 알람을 하고, 01:00에 잠을 청했는데, 05:30에 잠에서 깼다. 이후는 잠을 자려들지도 안했다. 빤한 결과가 오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운전을 하여 자동차 두 대로 움직이려 했는데, 잠도 못잔 사람으로 사치스런 생각이 들었다. “설아차를 타고 다니자. 그리고 오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돌아오자.” 이렇게 마음먹고 설아가 나오자마자 오늘은 너의 차를 타고 다녀야겠다고 선언했다. 아침을 거르고 설아차를 타고 갔다.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폰으로 안내를 받아, 어제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는 집사람을 태우고 건양대병원으로 향했다. 예약시각보다 먼저 도착해 진료의뢰서를 제시하고, 재활병원에서 요구한대로, 설명을 했다. 100% 본인부담과 진료비영수증, 진료비 세부내역서, 약이 필요할시 원내제조 학인서 등을 이야기 하고 수납했다.
일반적으로 하는 굴절이상, 안압 등의 검사를 마치고, 암실로 데려가 특별한 검사도 했다. 그리고 기존 안경에 교정을 하는 렌즈를 덧붙여야 한다며 6개월 정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단다. 집사람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여, 안경 보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휠체어를 빌어 타고 아점을 먹으러 갔다. 각자 다른 메뉴를 시키고 먹고 있는데, 집사람은 매운 맛이 전혀 없는 떡국을 시켰는데 맛이 없다고 조금 먹고 말았다. 그때 처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왕 외출을 나온 김에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가란다. 이미 먹고 있다고 말하고, 조금 후에 들르겠다고 하고, 계룡으로 향했다.
처제의 집에 가서 안방의 침대에서 눕히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선치과병원으로 향했다. 타워주차징으로 차를 넣으라는 걸 10분이면 될 거라고 입구에 세워놓고 들어갔다. 그런데 20분은 걸린 듯하다. 그리고 설아가 재활병원에 문의하여 약값 영수증까지 다시하려는 통에 20분이 더 걸렸다. 설아의 완벽함에 지쳐버렸다. 그리고 처제네 집으로 다시 왔다.
재활 치료를 60%로 줄였는데, 그나마 회피하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빨리 병원으로 돌아가게 하고, 나는 몇 년 만에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아침에 김유순씨의 메시지를 설아에게 이야기 했다.
오늘 저녁 반모임 있습니다.
*1804호에서 저녁 8시
*3반 반장님 류기환 프란체스카를 위한 묵주기도 있습니다.
나 홀로 참여하려고 했는데, 설아도 참여 한단다. 그런데 유순씨에겐 답장도 하지 않았다.
20:05에 설아가 도착하여 들어갔는데 우리를 기다리느라 시작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왕초보라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설아도 성경 한페이지를 읽는데, 말하듯 빠르게 잘 읽었다. 마치 모두 외고있는 것처럼 막힘 없이 술술 읽었다. 그런 부분에도 내가 많이 늙었음을 절감했다. 그리고 끝부분에 집사람을 위하여 묵주신공(默珠神功) 성모송을 했다. 같은 구절을 50회나 외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목덜미와 등이 당기고 통증이 오는 걸 한참 참았다.
천주교가 나의 생활방식에 맞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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