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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아내에 대한 일기

D+22,23일(05.12,13) 요양도 거치지 않고,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by 뚝밑아이 2017. 5. 14.


12. 오늘은 설아가 혼자서 돌보기로 했다. 내일은 내가 혼자서 돌보기로 했다.

간병사도 전일 19:00~이튿날 09:00까지 14시간을 주문하여 승낙을 받았다. 다만 13일만은 손자를 돌보아야 할 입장이 되어서, 07시에 교대하기로 했단다. 요금은 익산보다 높았다. 당분간 그렇게 해 보기로 했다.

09:00부터 10:45까지 물리치료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힘들다고 한단다. 잠시 쉬나 했더니 11:10부터 30분 동안 작업을 했다. 점심시간은 비교적 길어서 두 시간 동안 쉬었다.

그러나 오후는 13:45부터 16:25까지 3시간 가까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8시가 되어 설아가 집에 도착했다.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자란다. 내일은 대전의 친구들이 온단다. 그래 일찍 자자.

 

13. 오늘은 내가 집사람을 돌본다. 07:00에 교대를 해 주기로 했다. 오늘은 잠을 충분히 잤다. 05:30에 알람을 한 시각에 깨어 세수를 하고, 출발하니 06:00이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신호등도 모두 깜빡이기만 한다. 병원에 도착하니 40분이 걸렸다. 간병사가 황송한 멘트를 한다. 일찍 보내고, 그때부터 나의 돌보는 시간이 된 것이다.

07:25에 아침 식사가 배달되었다. 나의 것도 배달되었다. 맛있게 먹었는데 집사람은 입맛이 없다고 반밖에 먹지 않았다. 오늘도 내가 너무 빨리 먹었나? 그렇거니 집사람은 약을 여러 알 먹더니 눈을 감고 누웠다. 잠시 후 일어나서 소변을 본단다. 소변을 본 뒤에 누워 잠을 청했다.



09:20에 오는 첫 치료가 있어서 15분에 알람을 맞추어 놓고, 나도 눈을 지그시 감고 졸음을 청했다.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집사람을 깨웠다. 그런데 집사람은 하기 싫다며 안가겠단다. “그래도 되는 거야?” 하기 싫은 걸 어떻게 해?” 하기 싫다고 치료를 안 받?” …….” 곰곰이 생각하더니 일어났다. 그리고 휴게실을 통해 8층으로 올라갔다. 여러 사람이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들어가니 류기환씨냐고 집사람을 불렀다. 젊은 남자치료사가 휠체어를 밀고 갔다. 넓은 판 위에 뉘면서 여기저기 마사지처럼 점검하였다. 15분 정도 마친 후에 집사람이 논산분이라고 말했다. 논산어디냐고 물으니 내동이란다. 이양반이 내동초등학교에서 퇴임했다.’고 하니, 교장선생님이셨냐고 물었다. 아니고, 승진에 관심 없어서 애들만 열심히 가르쳤다.’고 했다. 앞방의 환자 선배님을 보고, 나도 같은 부류의 교장선생님으로 알고 물은 것으로 위안했다.

1차 치료를 15분 동안에 마치고 한 시간 넘게 다음치료를 기다렸다. 10:45에 알람을 맞추어놓고 집사람은 잠을 청하고 나도 잠을 청했다. 그런데 바로 처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방울도마도와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이라고 하신다. 씻어다 집사람에게 주니 싫다고 하여 도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다시 시간이 되어 이야기하니 두말 하지 않고 가잔다. 이번에는 9층 물리치료실로 올라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하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다리에 센서를 연결하고 무엇을 측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측정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집사람은 참다못해 그 다음은 무엇을 하냐고 물어보란다. 어련히 알아서 차례로 하는데 무얼 물어보라는 말이냐고 되물으니, 나에게 참 물어보기 싫어한다.’고 짜증을 냈다.

집사람과 내가 찌그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여자치료사 한분이 오시더니 침대에 세 개의 넓은 띠로 포박하고 세우는 장치로 데려가서 다리에 측정하는 기기를 매단 채로 45°쯤 올렸다. 전날에 많이 세웠다가 힘들다고 하여 내린 모양이다.

그 상태로 30분쯤 있다가 내리더니 넓은 판 위에 눕히고 마사지를 시작했다. 난 그 옆에서 그 장면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옆에서 그걸 본 모양이다. 나에게 다가와서 실내에서 치료 과정을 촬영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면서 지워달라는 것이다. 나는 기분이 상했지만, 할 수 없이 보는 곳에서 두 컷을 지웠다. ‘놓친 고기가 크다.’고하는 속담처럼 잘 찍은 사진인데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모두 마치니 정했던 100분 시간이 맞아떨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렸다. 문이 열렸는데 자리가 넓어 나중에 내릴 분부터 태우려고 양보했다. 그런데 5층 가는 분들이 많이 오셨다. 6층 내려가는 내가 처음으로 타려다가 못타고 말았다. 휴게실로 내려가는 것을 타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 엘리베이터가 4개나 되지만 승객이 휠체어를 탄 경우가 많아서 러시아워 시간엔 타기 어려웠다.

다시 방으로 왔다점심이 배달 되어 있었다. 둘이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집사람은 여전히 누웠는데,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 내가 주물러 주거나 가볍게 문질러준다. 통증이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 것처럼, 여러 곳이 아프단다. 오늘도 등, 허리, 종아리, 발 등 많이 주물렀다. 남편이 말하기 편하니까 주무르라고 하지, 아들딸이나 간병사에게 그렇게 부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원이가 내려왔다고 전화가 왔다. 주차를 어디에 했느냐고 물으니 버스를 타고 왔단다. 문 앞에 왔다는 것이다. 61호실이라고 말했다. 재원이가 호실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처음에 혼선이 온 것이었는데, 재원이 말이 짜증 섞인 말투로 들렸다. '어쩌랴! 그 또한 나를 닮아서 그런 걸!'

그래도 재원이가 내려와서 시간이 넉넉해졌다. 휴게실로 갔다가 입원실을 돌아다니며 서선배님을 찾아보겠다고 마음먹고 6층부터 입원실 앞의 명패를 둘러보았다. 중환자는 붉은 색, 경환자는 푸른색 중간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계속 더듬어 오는데, 마지막 집사람 입원실 바로 앞에 서대라고 적혀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방인데, 환자가 두 분만 있었다.

우리 방의 유리창 쪽에 있는 여자분은 이 병원에서 가장 오래 계신 분이란다. 10년이나 된 분인데, 왼손은 쓰지를 못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다. 홀로 계신지 오래 되었단다. 옆의 분도 혼자 계신데, 가끔 남편이 들르신단다. 그 분은 8개월째 재활을 하는 분이란다. 

그분이 밖에 나가시더니, 스치로플 박스를 몇개 가지고 들어오셔서, 우리의 낮은 보호자용 침상을 들어보란다. 당신 침상을 높인 것처럼, 우리의 것도 높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체념하고 그냥 지내려 했는데, 알맞은 박스를 구해다 주시며, 도와주려는 배려가 너무 고맙고 우리를 감동시켰다. 

대전과 근교에 사는 친구들이 올지 모른다고 기다리는지 가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아직 문의만 있었지 온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나보다. 과일이라도 사다 놓아라.’ 하여, 앞의 가게로 가 보니 신통한 게 보이지 않아 사과만 사서 들고 와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처남 내외가 찾아왔다. 환자가 원광대병원에 있을 때보다 자유롭고 말도 잘하니, 사경에서 살아난 것 같아 표정이 아주 밝다. 그리고 집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장인 장모님도 이 근처의 병원에서 요양하고 있다며 그곳도 들러야 한다며 갔다.

집사람이 간병사에 대하여도 물어보았다. 시간과 사례금 등,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물었다. '간병사가 참 착하고 순수하다'고 했다. 난 당분간 간병사를 두고 보면서 생각 중이라고 했더니, 처형에게 부탁하라고 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문제라고 하니, 그래도 언니가 벌이가 없어, 큰 보탬이 될 거라며, 재원이가 의뢰를 하는 게 어떠냐?’고 한다.

그 문제는 내일 알아보기로 하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