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설아가 출발했다. 전에 어머니께 카네이션 한 송이 사다 달아드리라고 부탁했다. 50분 뒤에 설아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 어떠시니?” “글쎄요. 어제랑 비슷해요. 오늘은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네요.”
발목부터 시작해서 종아리, 무릎, 배, 허리, 아픔이 무슨 생명이라도 있어서 집사람의 몸을 헤매고 다니는 듯하다. 2주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있던 후유증일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국부적으로 아픈 것이 별별 생각을 유발시킨다.
배바위 처당숙님도 설아에게 전화하시고 안부를 하문하셨는데, 그렇게 아픈 게 당연하며, 그만큼 신경이 살아있다는 반증이니, 너무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단다. 참 그 옛날에 시골에서 서울까지 유학을 하신 선비다운 혜안이시다.
점심에 아들과 사위, 윤재까지 도착하였다. 내가 먼저 들어갔다.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공기를 거의 비웠다. 그만 먹겠다고 하여 남은 죽을 정리해보니 80%는 먹은 듯하다. 어제 미음 다섯 수저로 시작하여, 점점 양을 늘리더니, 획기적으로 많이 먹은 것이다. 그리고 유제품 ‘긴요’에 가루약을 섞어 마시게 하였는데, 그것도 다 먹었다. 참 대견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리고 주렁주렁 매달렸던 각종 측정기와 수액 주입기도 하나만 남기고 모두 떼었다. 영양주입을 끊어서 입맛이 돌아온 것일까?
그리 생각했는데, 잠시 후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한다. 너무 급히 많이 먹지나 않았는지 아차 싶었다. 소화기가 특히 예민한 집사람이 아니던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겨우 아픈 배를 쓰다듬으며, 설아와 재원이, 금서방에게 식사를 하고 오라고 내려 보냈다. 그리고 나는 발목을 주물러 주었다. 너무 세다고 살살 하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만 하라고 하여 멈추었더니 잠이 들었다. 낮잠이지만 아파서 괴로워하느니 잠자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되어 그냥 두었다.
얼마나 잤을까? 집사람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왜?” “급해!” 신발을 꺼냈더니 “급하단 말이야!” 나는 침대 난간을 내리고 신발을 신기고, 집사람을 부축하여 화장실로 갔다. 앉자마자 소변을 보기 시작하더니 가만히 앉아있었다. “대변도 보는 거야?” “응!” 그러더니 잠시 후 소변을 또 보았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와 누워 잠이 들었다.
잠시 후 설아가 돌아왔다. 그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대소변을 다 보았다고 하였더니 간호사에게 이야기 했느냐고 물었다. 안했다니까 대소변을 얼마씩 보았냐고 묻는다. 화장지에 가려져서 못 보았지만, 80cc쯤 될 거라고 했더니 달걀 크기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달걀 한 개에 60cc로 잡고, 한 개 반 정도? 소변은 두 번 보았으니까? 100cc정도?” 설아가 간호사에게 가더니 말을 전한다. 너무 급하여, 대소변을 양변기용 요강으로 받아서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올라가려는데 아이들이 집사람을 휠체어에 태워 내려오고, 그 뒤로 유모차가 따라오고 있었다. 한방병원에 간단다. 복도 끝으로 나와 한방병원으로 들어갔다. 접수와 수납을 하고 신경내과5라고 쓰인 방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사위가 카네이션을 꺼내 집사람과 나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병원에서는 생화를 쓸 수 없단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조금 어색하였다.
그 곳에서 집사람은 약간의 여유가 생겨, 윤재를 보며 얼러보았지만, 윤재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외손자인 것을, 바라보는 집사람의 눈가에 잔잔한 웃음이 보인다.
그 뒤 간호사의 문진이 자세하게 이루어졌고, 몸의 반응도 자세히 검사했다. 잠시 후 의사의 진료도 이루어졌다. 의사는 이곳에서 하는 침술, 뜸, 부항 등 개략적인 한방 치료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들 입장에선 한방요양을 할 것인가? 양방요양을 할 것인가? 탐색하는 진료였다.
집사람은 피곤하다고 괴로워했다. 나 혼자 휠체어를 밀고 병실로 왔다. 가까운 거리인데 휠체어로 오니 멀게 돌아와야 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된 병원이지만, 아무래도 정상인 행보보다는 참 멀었다. 집사람은 피곤한 몸을 눕히고 이내 잠이 들었다.
4시경에 재원이만 남기고 설아와 금서방, 윤재를 태우고 돌아왔다.
저녁 늦게 재원이가 오길 기다려 횟집에서 식사를 했다. 설아가 어버이날을 맞아 저녁을 산단다. 나는 집사람만 빼고, 식사를 하자니 죄스런 생각도 들어 사양했지만, 설아와 사위의 호의를 거스르기도 어려웠다. 빨리 나아서 온 가족이 한상에서 식사를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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