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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chrome사진/백두산을 찾았다.

제3일엔 서파코스로 올랐다.

by 뚝밑아이 2020. 8. 6.

백두산을 오르는 코스별로 북파, 서파, 남파라고 명명한다.

백두산에 아주 가까운 곳북파산문 근처에 호텔을 정하였는데,

참고로 북파산문읠 기점으로 빨간색은 제1 주황색은 제3일, 하늘색은 제4일 이동한 경로이다그리고, 백두산 근처 보라색 백두산 전용셔틀버스 경로이다.

 

서파코스는 거슬러 이도백하라는 곳으로 돌아 서쪽으로 한바퀴 돌아가서, 백두산의 서파산문까지 갔다. 버스로 100분 동안이나 돌았다.  

셔틀버스로 40분을 더 가서 주차장에 내렸다.

1442계단을 올랐다. 듣기에는 겁을 먹었지만 오를만 했다.

 

 

 

모두들 한계단 한계단 오르고 있는데 건장한 사람이 의자에 버티고 앉아있다.

그보다 몸집도 작은 가마군은 힘겹게 땀을 연신 닦아가며, 가마를 들고 간다.

얼마나 불평등한 광경인가? 가마군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비키라는 신호를 하며 가다가 50계단도 오르지 못하고 쉬었다.

가마를 한줄로 놓고 쉬면 좋으련만 옆으로 나란히 놓고 쉬었다.

 

이런 나의 불만은 공연한 걱정이었다.

가마군의 일자리를 위하여 일부러 탄다는 것이었고, 그리고 가마군들은 손님의 체중에 따라 가마군을 교환하고 있었다.

 

 

1442가 마지막 계단인데, 짝수는 쓰지 않는 모양이다.

 

 

 

다 올랐다. 천지가 한눈에 보인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시계도 매우 좋았다.

백두산의 최고봉이다.

어릴적엔 병사봉으로 알고 있었는데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 한단다.

 

 

 

10mm 어안렌즈로 찍었다. DX렌즈로 거림칙 하지만 이런 때 사용을 한다.

좋은 자리는 업자들이 울타리를 쳐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그래도 차선책이라도 찾아야 했다.

 

 

 

네다섯 컷을 찍어 파노라마로 이었다. 해상도가 단렌즈로 찍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백두산 아랫쪽으로 가더니 금강대협곡이란 곳으로 갔다. 입구의 거대한 나무다.

 

 

 

 

금강대협곡의 전모는 관망할 수는 없었지만, 곳곳에 괴석들의 운치가 돋보였다.

 

 

 

길목에 다람쥐가 돌아다니고 있었다황급히 망원렌즈를 갈아끼자 그놈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

 

 

 

 

 

 

 

 

http://maps.google.com/?ll=41.958979,128.006516&spn=0.22339,0.398598&t=h&z=12

 

 

4일엔 민족의 발자취를 느껴보았다.

마지막 날에는 조선족 자치주를 돌아보면서 우리 민족의 냄새를 맡아 보기로 했다.

이도백하를 거쳐 화룡시의 청산리 대첩지, 용정시를 거쳐 윤동주씨 생가, 두만강 뗏목 처험 등을 해 보기로 했다

 

간도지방엔 우리민족이 40%가 살고 있단다. 간도지방의 가옥, 특히 지붕 형태를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사진과 같은 팔작지붕은 거의 조선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되고,

 

 

 

아래 사진과 같은 맞배지붕으로 된 가옥은 중국 한족이 살고 있는 집으로 생각해도 된다는 것이다.

 

 

 

용정시 대성중학교에 왔다. 20년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본관은 옛날처럼 역사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역사전시관엔 윤동주 저항시인을 많이 강조하고 있었다. 그의 육필과 원고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여기에선 문익환 목사도 꽤 크게 클로즈업 되었다. 그도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 젊었을 적엔 꿈많은 청년이었다. 인생의 무상함을....... .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일송이 있던 산꼭대기엔 이제 소나무는 말라죽고 정자가 대신하고 있었다. 이 사진은 전시물이다.

 

 

윤동주 생가를 갔는데, 집터만 있었고 생가는 복원시켜 놓았단다. 윤동주 생가의 담 밑에 엉겅퀴가...... .

 

 

바로 두만강으로 가려는데, 가는 길이 얼머전 장마에 유실되었단다. 그래서, 용정시로 다시 나와 우회했다.

어쨌든 두만강변에 왔다. 철교 건너가 북한 땅이었다. 무릎만 걷어올리면 건널 수 있을 듯 하다.

판문점에서 본 이래, 북한 땅을 가까이보기는 처음이었다.

건물이 구식이고, 산이 헐벗었다.

기차가 다니는 철교도 북한 쪽은 도색이 되지 않았다.

 

 

 

우리 고유의 단청이 그려진 기둥이 서 있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지역의 조선족은 우리의 전통을 잊지 않고, 많은 걸 간직하고 살고 있다고 한다. 어느 면에선 우리보다 오히려...... .

 

뗏목 체험중에 북한의 청년들이 중국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같은 머리스타일이고 같은 복장이었다.

통행증이 있으면 왕래가 가능하단다.

 

 

 

연길역이다.

 

 

 

일금 4만원짜리 옵션이다. 비행기 시간도 멀었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북한 공연단이 하는 무용을 보았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애초에 가이드의 말은 촬영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중국 관리인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카메라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내가 화를 내며 나간다고 했다. 가이드가 후레쉬를 터트리지는 않는다고, 다시 말을 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나중에 보니, 나보다 핸드폰으로 찍는 사람들이 공연 감상을 더 방해하고 있었다.

 

 

 

 

 

 

 

일사불란한 그들의 동작은 사회주의 냄새가 역력하다.

 

 

 

"농자는천하지대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