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아내에 대한 일기

D+17일(05.07) 벌써 병원에선 퇴원을 거론하고 있다.

뚝밑아이 2017. 5. 7. 23:20

 

오늘은 설아가 05:40에 일어나 머리를 감는다. 왜 일찍 일어났냐고 물으니 어제 차 빼는 데도 오래 걸렸단다. 열쇠를 달래서 지하주차장에 가 보았다. 재원이가 주차한 차를 찾아서, 차를 빼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지상에 대어놓고 들어오니, 10분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설아는 윤재 분유를 타고 있었다. 그사이에 아기 돌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06:15에 나갔다. “12시 반에 오세요. 운전 조심하고…….” “내가 할 소리야. 너나 조심해.”

저는 13:00까지 채우려는 각오이다. 저런 아이를 낳은 사람이 집사람이다.집사람이 고맙고, 귀중하게 여겨진다.’

 

점심에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두 번째로 끓여본 것이다.

돼지고기 찌갯거리를 반근 사왔다. 그리고 찌개두부를 사왔다. 묵은 김치를 썰어 넣고, 돼지고기를 넣고, 물을 두 큰컵 넣고, 20분 끓였다. 도마에 마늘 다진 것, 대파 썰어 얼린 것, 40개로 썬 두부를 차례로 놓았다가 10초 간격으로 넣었다. 그리고 7분 후 조미료를 아주 적게 넣고, 불을 껐다.

두부가 덜 불어난 듯하지만, 아이들은 맛있단다. 설거지를 대충 하고 설아에게 출발했다. 설아의 부탁에 맞추어 정확하게 13:00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9시에 빵을 먹어 그리 배고프지 않단다. 그래도 저녁을 생각하여 식사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집사람의 MRI 촬영을 한단다. 그래서 휠체어에 태우고 2층으로 내려갔다.

 

그림 퍼옴

MRI 실에서 전용휠체어로 갈아타더니 거대한 촬영대 위에 눕혔다. 전에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나는 뇌출혈 원인을 복통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촬영을 기다릴 때 설아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거대한 기계가 집사람을 태우고 원통 촬영기 속으로 들어간다. 5분 정도 후에 집사람이 움직여서 실패를 했다고 재원이를 금속소지품을 빼놓고 보조자로 들어가라 했다. 그래도 집사람이 움직여서 실패를 했다.

한참을 기다리더니 83병동의 간호사가 와서 수면제를 주사하고 갔다. 그리고 다시 시도했다. 5분쯤 뒤에 중단하고, 나왔는데 다리가 옆으로 뉘여 있었다. 또 움직여서 실패한 것이다. 얼마나 아프면 고통을 못 참고 움직일까?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고, 촬영 기사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에 다음 촬영자가 와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또 한참을 기다리니 83병동의 다른 간호사가 왔다. 약을 두 가지 섞어서 주사하고 갔다. 수면제인 모양이다. 다시 촬영기 속으로 들어가더니 10여분 동안 찍었는데, 나오길래 또 실패했나? 걱정했는데, 기계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다.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휠체어를 못 탄다고 침대를 불렀다. 마취에서 덜 깬 모양이다. 잠시 후 침대가 와서 옮겨 타고 병실로 왔다.

기진하여 불러도 알아듣지 못한다. 3시가 넘었다. 설아도 쉬어야하기 때문에 잠든 집사람을 두고 돌아와야 했다. 깨어나시면 식사와 엔요(유제품)’를 드리라고 당부하고 나왔다.

오늘은 집사람과 말도 못해보고 왔다. 왜 또 배가 아플까?” 걱정이 된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들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며칠 내로 퇴원을 하란 말이 있단다. 모두 나아서 퇴원을 하라는 게 아니라, 이제 저들이 할 일은 다 했다는 뜻이란다. 요양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하란 말이다. 당장에 요양병원을 찾아야 하겠다. 어찌 보면 병원이 무책임하다. 나는 주치의를 자주 만난 기억도 없다. 그런데 식사도 못하고 영양 수액을 넣는 환자를 퇴원 운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도 입장을 정해야 할 듯하다. 수 일 내로 요양병원을 찾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