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아내에 대한 일기

D+1일(04.21) 의식이 있는것 같다.

뚝밑아이 2017. 4. 23. 08:17

 

아침 일찍부터 처형이 반찬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집사람을 떠올렸다.

밥은 19일 저녁에 내가 앉혔던 밥이 건들지도 않은 채로 있어서 처형께서 만들어 주신 반찬으로 식사를 했다.

집사람이 만든 반찬을 다 먹으면 누가 또 만드나? 생각하며 반찬에 대한 의미를 강조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아이들한테 아픔을 상기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아서였다. 내 생각으로만 삭였다.

 

9시 반경에 출발하여 병원에 갔다. 당숙 내외분과 육촌도 같이 오신단다. 아들에게 마스크를 준비시켰다.

잠시 후 처당숙 내외분이 처육촌과 같이 오셨다. 내 손을 잡으며 위로해 주셨다.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어젯밤에 폰으로 찍은 화면을 보여드리며, 수술 과정을 말씀 드렸다.

당숙모님은 당신의 몸도 불편하신데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며 위로를 해 주셨다.

며칠 전에 107세 처작은할머니 상을 치르시며 힘드셨는데, 조카가 어려운 일을 겪어 찾아오신 것이다.

오전 면회 시간이 되어 들어가 보았다. 어제보다 얼굴이 편해졌다.

여보! 눈좀 떠봐. 잠깐 눈을 떴다가 이내 다시 감았다. ‘신부님과 모두들 자기 빨리 나으라고 기도하고 있대.’ 전미순씨의 말을 전해주었다. 듣는 건지 모르겠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이따가 다시 들어올 요량으로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처형이 손수건을 건네 주셨다.

어제보다는 의식이 좋아진 것 같아요. 말도 알아듣는 듯 했어요.”

당숙 내외분도 들어가셨다. 밖에서 계속 눈물을 훔쳤다. 딸은 의사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격이 치밀한 딸을 두어 이런 어려움에 큰 보탬이 되었다. 아들과 딸이 참 대견스럽다. “재원아, 설아야 고맙다.”

당숙도 나오시고 처제내외와 처형도 들어가셨다. 30분은 참 짧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끝날 무렵 다시 들어가 보았다. “여보 이따가 또 올께.” 반응이 없다. ‘역시  나에게 원망이 남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당숙께서 금일봉을 하사하셨다. 사양하려 하였으나 어른이 주시는 건데.’ 하는 주변사람의 말에 받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설아에게 의사를 만나 한 이야기를 모두 듣게 이야기 하여 달라고 부탁했다. 각자 주문한 점심을 먹고 자리를 정리한 다음 설아는 정리한 파일을 가지고 가운데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현재 상태와 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엄마를 만난 이야기도 했다. “엄마! 하고 부르니, 엄마는 고개를 돌리려고 머리를 움직이고, 손을 엄마의 손에 넣어주니 꼭 쥐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각자가 느낀 것을 단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하여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만은 냉정하게 대하는 듯하여 슬프다. 내가 잘 못한 거야. 집사람에게 참으로 미안했다.

병원 앞에 나와 모두들 서로 위로하며 헤어졌다. 다음 면회시간 까지 7시간을 어찌할까 망설이다 집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그런데 설아는 남아 있겠다고 하였다. 의논 끝에 설아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처형은 내일 행사가 있다고 처제 차를 타고 갔다.

집사람의 목에 꽂아놓은 호스를 제거한다 했는데, 호스를  기도 확보를 위해서 했지만, 너무 오래하면 그것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있다고 한. 오늘 중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 와서 엄중한 사태를 그냥 넘어가면 듯하여, 집사람에 대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의 기억력이 아주 나빠져서 지나치면 다 잊을 것이다. 몇 시간에 걸쳐 기억을 더듬어가며 글도 아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가 잊었던 부분이 떠오르면 첨가해가면서 쓰고 있다.

저녁 면회시간이 다가와서 저녁을 먹고, 19:15에 출발하기로 했다.

병원 앞에 도착하니 20:00이 되었다. 설아에게 전화를 했더니 집중치료실 앞에 있단다. 우리도 그리 갔다. 설아는 그곳에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드나드는 관계자가 있을 때마다 밖에서 엄마를 관찰했다는 것이다때로는 다리를 들어올리고몸을 뒤척이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몇 시간을 그리 했는지 묻지 않았지만 애틋한 딸의 마음에 감동 했다.  잠시 후 점순씨 내외가 왔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발가둥이 친구 아닌가점순씨를 보니 슬픔이 북받쳐 올랐지만, 꾹 참고 자초지종을 이야기 해 주었다.  집에서 정리하다 오니까이야기가 좀 쉬웠다. 점순씨와 강선생님은 나를 위로하는 말을 해 주셨다.

시간이 되어 들어가 보았다기도에 꽂았던 호스는 제거 되었다. 씩씩 호흡을 하면서 잠들어 있었다. 들을 리 없겠지만  이야기를 했다.   “내가 정말 미안해, 눈좀 떠봐."   듣는지 마는지 반응이 없다.  무의식중에도 다 듣는다는 말을 믿고,  이야기 했다.   “여보, 미안해.”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눈물이 앞을 가려 이야기를 이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 친구들 성당 신부님도 기도하고 있대. 자기 빨리 일어나라고.”

아무런 반응은 없지만  더 기다려보자마지막에 면회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하고 경고를 할 때 다시 들어가 내일 또 올께! 하고 큰소리로 말하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이야기의 첫 반응이었다.  기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집사람이 나를 용서한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그 마음으로 집으로 갔다.

그리고 일기를 써내려갔다. 잊기 전에 써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