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엔 후에를 돌아보았다.
마지마막 밤을 묵은 파크뷰호텔(PARK VIEW HOTEL)이다.
왼쪽 구관 4층에서 묵었다.
아침에 호텔 앞을 나와보니 인력거가 줄을 이루고 서 있었다.
나중에 우리가 탈것이었다. 씨클로라는 것이었다. 앞자리에 손님이 타고 뒤에서 자전거로 움직인다.
씨클로를 타고 시내를 돌랐다. 로터리에 베트남 국기가 펄럭인다.
씨클로를 타고 후에의 TRANG TIEN 다리를 건너고 있다.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 손을 저으며 찍지 말라는 의사표시를 했다.
찍는 포즈를 취하지도 않았는데, 괘심한 생각이 들어 지나다가 몰래 한컷 찍었다.
씨클로에서 내려서 전동차를 갈아타고 후에성을 돌았다.
후에성 입구에 왔다.
입구 전면 광장에 커다란 베트남 깃발이 서 있었다.
후에 왕궁 깃발 타워란다.
옹우엔 왕조의 도읍지란다. 베트남이란 국호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후에성 입구의 오문이다. 정직탕평(正直蕩平)이란 통치자의 의지가 보인다.
교지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그것은 '지'자가 旨인데 여긴 志좀 다르다
보대십구년십일월이십구일(保大拾玖年拾壹月貳拾玖日)이라고 쓰고 옥쇄를 찍어 놓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보대 19년이면 1945년이다. 옹우엔의 마지막 왕이었다.
위의 교지에 사용된 옥쇄이다.
응우엔 조상들이 잠들어 있는 세조묘란다.
응우엔 조상들이 한줄로 모셔있다.
.
세조묘의 바깥 모습이다..
티엔무 사원 입구다.
1601년에 세워진 불교사원으로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나라 신문에도 오르내렸던 고딘디엠대통령의 불교 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소신공양(燒身供養)한 탁꽝득스이의 수행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흐엉강 쪽으로 면한 계단 입구에 일주문 격으로 서 있는 네 개의 기둥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21m 높이의 붉은 벽돌로 쌓은 전탑인 팔각 7층 석탑이 있다.
티엔무 사원의 7층 석탑이다.
1844년 제 3대 황제가 세운 탑으로 각 층마다 모셨던 불상은 전쟁 중에 도난당하여 다시 만든 것이라 하며 탑 자체가 베트남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퍼온글)
소신공양(燒身供養)하는 탁꽝득스이의 당시 모습이란다.
두번째의 화장에도 연소되지 않았다는 탁꽝득스님의 심장을 스님이......
왕릉의 제단과 탑이다.
카이딘 왕릉 입구이다.
카이딘 왕릉 본전이다. 양쪽 기둥 모습이 특이하다.
카이딘 왕이 모셔진 계성전(啓成殿)이다.
안에 카이딘 왕이 모셔진 계성전이 있다..
다낭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까운 터널 길을 마다하고 일부러 하이반 고갯길을 택했다.
고색 창연한 안내판이다
전망대는 따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모두들 쉬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오면서 다낭 쪽을 바라 보았다.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 돌출부분이 다낭이란다.
다낭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먹고, 먼저 나와 한강가에서 용다리를 잡아 보았다.
다낭 한강 주변에 전구로 예쁘게 꾸며놓은 조형물들이 있었다.
인천으로 출발 전의 다낭 공항의 겉모습이다.
왼쪽에는 CANG HANG KHONG QUOC TE DANANG라고 쓰여있는데,
오른쪽엔 DA NANG INTERNATIONAL AIRPORT라고 쓰여있다. 위는 베트남어인듯 하다.
https://www.google.com/maps/@16.4333668,107.5350558,13z/data=!3m1!1e3